아산열린교회

전체 메뉴 바로가기 로그인 바로가기

담임목사 칼럼

이전 페이지 이동 홈 화면 바로가기
마/르/다/의/ 부/활/의/ 영/성
최종인 2008.9.25 조회 114


마/르/다/의/ 부/활/의/ 영/성

부활신앙이란 무엇인가? 첫째는 예수님이 사흘만에 부활했다는 사실(fact)를 믿는 것이다. 사실이지만 이성적으로 이해가 안 되는 부분이다. 초 이성적이지 비 이성적인 것은 아니다. 이해가 안 가지만 믿어지는 것이 부활신앙이다.


예수님의 부활사건에 대한 기록들은 예수의 부활사실을 '믿었다’고 하는 말보다는 ‘오히려 의심하는 자가 있더라’ ‘오히려 의심하더라’로 되어있다. 도마를 보자 그는 "내가 그 손의 못자국을 보며 내 손가락을 그 못자국에 넣으며 내 손을 그 옆구리에 넣어 보지 않고는 믿지 아니하겠노라 하니라."(요20:25) 했다. 어쩌면 이러한 회의는 당연하다고 해야 할 것이다. 왜냐하면 부활신앙은 본질적으로 인간이성의 한계를 넘는 것이다. 인간이성으로 이해가 되는 일이라면 부활은 '신앙'이 아니다. 단순한 지식일 것이다. 그래서 부활신앙이고 이 부활을 믿게 될 때 놀라운 기적과 능력이 되는 것이다. 모리스라는 분은 "그리스도를 죽음에서 일으킨 능력이 또한 그리스도인 속에서 활동한다. 부활은 계속되는 작업이다"고 하였습니다.


둘째로 부활신앙은 예수처럼 '부활한다'는 믿음이다. 첫째로 언급한 사실을 믿는 것은 과거적 부활신앙이라면, 예수처럼 부활한다는 믿음은 미래적인 것이다. 예수님 재림할 때 "무덤 속에 있는 자가 ...생명의 부활로 혹은 심판의 부활로 나오리라"(요5:28-29)라는 것과 살아서 예수의 재림을 맞는 자들은 "순식간에 홀연히 다 부활체로 변화"(고전15:51)하리 라는 것이 미래적 부활신앙의 핵심이다.


첫째와 둘째의 부활신앙이 부활신앙에 매우 중요함을 부분임은 사실이다. 그러나 예수님이 생전에 가르치시고자 했던 부활신앙이 있다. 과거적인 것도 아니고, 미래적인 것도 아니고 현재적인 것이다. 차라리 현실적이고 실질적인 부활신앙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요한복음 11장의 나사로의 죽음과 부활(소생)을 통해 주님이 가르치시고자 했던 현실적 실질적 부활신앙을 볼 수 있다. 요한복음 11장 23-24절에 예수님은 `네 오라비가 다시 살리라'고 말씀하십니다. 이에 대해 마르다는 `마지막 날 부활에는 다시 살 줄을 내가 아나이다'라고 대답합니다. 마르다는 미래적 부활신앙을 가졌다는 것입니다. 겉만 보면 훌륭해 보이는 신앙고백입니다. 마르다의 문제는 현실적, 실질적 부활신앙이 없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11장 24절과 25절 사이에는 "그것 뿐이냐!"고 꾸중하시는 주님의 침묵이 흐름니다.  네오라비 나사로가 죽엇는데 마지막 날 부활하는 미래적인 부활은 아는데 네 오라비가 지금 살 것은 왜 믿지 못하느냐는 주님의 무언의 책망이 있는 것입니다.  "마르다야 나를 그 정도로 밖에 보지 않니? 마지막 날이 되어야 너의 오라비를 살릴 수 있고 지금은 전혀 손을 쓸 수 없는 그런 사람으로만 믿고 있느냐?" 크게 오해하고 있구나. 분명히 말해주지.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부정적으로 말한다면 마르다의 믿음이 잘못되었다는 것을 지적하는 엄한 꾸중으로도 볼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무덤의 돌을 옮겨놓으라고 하자 마르다는 “주여 죽은 지가 나흘이 되었으매 벌써 냄새가 나나이다"고 반응을 했으니까요. 아마도 그녀가 예수님이 부활임을 진짜 믿었다면 그런 식으로 반응을 하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마르다의 신앙의 문제는 고백은 하면서도 오라비가 죽은 비통한 현실에 전혀 도움을 주지 못하는 무력한 것이었습니다. 어떤 분이 마르다의 부활신앙을 "기근을 만나 굶주리고 있는 사람의 금고에 들어있는 1억짜리 채권이나 다를 바가 없다."고 표현 했습니다.


오늘 우리가 안고 있는 부활신앙의 문제점이 무엇인가를 잘 지적해 주는 표현입니다. 특히 마르다의 신앙은 여러 가지 점에서 우리의 부활신앙과 닳았습니다. 참된 부활신앙이란? 현재의 삶의 자리에서 힘을 발휘하고 효력을 나타내는 살아 있는 능력이다. 아브라함처럼 죽은 자를 살리며 없는 것을 있는 것같이 부르시는 능력 있는 분으로 믿고 순종하는 삶을 살아야 하는 것이 아닐까요?


요즈음 사회적으로 자살이 큰 문제가 되어 가고 있다. 이 불 명예 스러운 자살대열에 우리 그리스도인들도 동참하는 모습을 보며 자기생명하나 지키지 못하는 우리의 나약한 신앙의 단면과 사회생활의 엄청남 스트레스, 인간관계의 불화등등등...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능력을 잃고 지치고 파리해저 가고 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참 부활의 영성으로 이런 현실적인 도전을 극복하고 뛰어 넘어야 할 것이다. 여기에 주님 부활의 의미가 있으리라. 우리는 분명히 예수님 처럼 말해야 할 것이다. "이 병은 죽을 병이 아니라 하나님의 영광을 위함이요 하나님의 아들로 이를 인하여 영광을 얻게 하려 함이라."(요11:4) "네 오라비가 살리라", "하나님의 영광을 보리라"

 

댓글 0
상단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