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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임목사 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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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난/한/ 과/부/의/ 두/ 렙/돈/의/ 영/성
최종인 2008.9.25 조회 218


가/난/한/ 과/부/의/ 두/ 렙/돈/의/ 영/성


마가복음 12장 41절에 "예수께서 연보궤를 대하여 앉으사 무리의 연보 궤에 돈 넣는 것을 보실새"라고 했다. 예수님은 연보 궤 맞은 편에 앉아서 연보하는 모습을 지켜 보고 계셨습니다.  이 말은 그들이 어떤 모양으로, 어떤 모습으로 돈을 넣고 있느냐 하는 외형적인 모습을 주목하고 계셨다는 의미가 아니라 헌금을 드리는 행동 이면에 숨겨져 있는 헌금을 드리는 이유나 목적과 헌금을 드리는 마음의 자세 등등을 보고 계셨던 것입니다. 이것은 단적으로 예수님은 헌금하는 것에 관심이 많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사실 우리 예수님의 비유 설교 38개 가운데 16개가 돈 문제를  다루는 설교입니다. John MacAthur 목사님에 의하면 신약에서는 천국과 지옥을 합한 얘기보다 더 자주 돈 이 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기도보다 5번 이상  얘기했고, 기도와  믿음 모두에  5백 구절 이상이 기록된 반면에, 돈과 소유에 관해서는 2천구절이 넘게 기록 되어 있습니다.
요한 웨슬레 선생도 비슷한 말을 남겼습 니다. 나는 주머니가 회개하지 않는 사람의 회개를 신용할 수가 없다. 한 사람이 복음을 듣고 자기 죄를 회개하고 예수 그리스도를 마음 속 에 받아 들이고 구원을 체험했다고 하십시다. 그가 정말 새 사람이 되었다면 저는 먼저 현저한 변화를 가 져와야 할 삶의 영역 중에 하나가 돈에 대한 태도의 변화입니다.
특별히 그것이 하나님께 대한 사랑을 고백하는 헌금에 반영 되지 못한다면 우리는 그 사람의 회심, 그 사람의 구원, 그 사람의 신앙, 그 사람의 변화를 신용하기가 어려울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헌금은 헌신의 상징입니다. 헌금행위야 말로 헌신의 본질을 보여주는 사건이라고 할 수가 있습니다.

예수님이 보시는 헌금은 "양"이 아니라 "마음의 자세"입니다. 예수님은 마가복음 12장 41절 하반절에 보면, '여러 부자가 많이 넣었다'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42절에 보면, 과부는 '두 렙돈, 한 고드란트', 다시 말해, 극히 작은 액수의 동전만 넣었을 뿐입니다. 그러나, 이 두 종류의 헌금에 대한 우리 주님의 평가가 무엇입니까? 여러 부자가 많이 넣은 헌금보다, 아니 모든 사람들이 넣은 것보다 과부가 넣은 두 렙돈이 더 많다고 주님께서 평가하십니다. 이것은 분명, 우리의 수학으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부분입니다. 어떻게 여러 부자들의 많은 헌금을 합친 것보다 한 가난한 과부가 드린 두 렙돈이 많을 수 있습니까? 그러나, 우리 주님께는 그것이 가능합니다. 왜냐하면, 우리 주님에게는 '얼마'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어떻게'가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은 헌금의 액수를 보지만, 우리 주님은 헌금에 담긴 마음가짐을 보신다는 것이죠.
특별히, 41절에서 44절까지 오늘 본문에 보면, 헌금과 관련된 동사 '넣다'라는 단어가 모두 7번이나 등장하고 있습니다. 41절에 2번, 42절에 1번, 43절에 2번, 44절에 2번 모두 7번입니다. 그런데, 그 7번의 동사가 두 가지로 나뉘어 집니다. 하나는 여러 부자들과 관련해서, 다른 하나는 한 가난한 과부와 관련해서입니다. 우리 개역 성경에는 모두 다 '넣다'라는 단어로 번역이 되어 있지만, 헬라어 성경에 보면, 분명하게 두 가지 형태로 구별되고 있음을 보게 됩니다. 그리고 NIV를 비롯한 여러 영어성경에서도 마찬가지로 나타납니다. 우선, 여러 부자들과 관련되어 사용되어진 '넣다'라는 동사는 'threw in' 또는 'gave in' 그리고 'contributed out'이라는 동사가 사용되고 있습니다. 이는 ‘던지다, 기부하다’라는 뜻으로 사용되는 동사입니다. 그런가 하면, 한 가난한 과부와 관련되어 사용되어진 단어는 모두 'put in' 즉 '두다, 맡기다'라는 동사가 사용되었습니다.
결론적으로, 여러 부자들의 영성은 비록 많은 양의 헌금을 드렸을지라도 그 헌금을 드리는 자세는 마치 기부하며 적선하듯 헌금 통에 마음없이 던져 버렸음에 반해, 한 가난한 과부는 비록 두 렙돈 밖에 되지 않는 적은 액수의 헌금이지만, 소중하게 믿음의 마음을 가지고 하나님께 드렸다는 것을 추정해 볼 수 있습니다. 다시 말해, 여러 부자들의 드린 많은 양의 헌금은 단지 기증에 불과했지만, 가난한 과부가 드린 극히 적은 양의 헌금은 그녀의 전부를 드린 참된 헌신이었던 것입니다.
아무리 많은 양의 헌금과 시간과 재능을 드린다고 해도, 그것이 마치 적선이나 기부하듯 그렇게 하나님께 던져지는 것이라면, 그것은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영성이 아닐 것입니다.  비록 가난한 과부의 두 렙돈처럼 극히 적은 양의 물질과 시간과 재능을 가지고 드린다고 해도, 그것이 자신의 전부를 드리는 희생과 헌신이 될 때, 하나님 앞에 아름다운 영성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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