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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교회 판도가 바뀌고 있다
최종인 2011.6.25 조회 295

국민일보에서 2011년 6월 22-24일까지 연제되었던 기사내용
[미션라이프] “올 것이 왔다. 정부와의 지난한 샅바싸움이 시작됐다.”

4월 10일부터 베이징 서우왕(守望)교회가 공안(경찰)의 원천봉쇄로 인해 야외예배를 진행하지 못하게 되자 중국선교 전문가들의 공통된 반응이었다. 중국정부의 서우왕교회에 대한 압력은 집요하기까지 하다. 지난 19일까지 11주째 주일 예배가 파행을 겪고 있다. 김천명(金天明) 담임목사 등 주요 리더들은 반(半) 연금 상태다. 예배에 참석하려던 성도들은 체포된 뒤 회유 과정을 거쳐 방면되고 있다. 결국 서우왕교회의 목회자이자 일본 유학파 쑹쥔(宋軍) 박사를 비롯해 일부 그룹이 이탈됐다. 정부는 삼자교회 인사들까지 이용해 이 교회 리더들과 개별적으로 접촉, 압력을 행사하고 있다는 전언이다. ◇교회와 정부의 정면충돌 서막(?)=중국은 정부 공인 삼자교회에 대해선 지도와 감독을, 제도권 밖 가정교회에 대해선 탄압과 단속이라는 ‘두 날개 전법’을 구사해왔다. 이 전략은 1980∼90년대 어느 정도 성과를 내다가 2000년대 중반 한계에 도달했다. 베이징 상하이 청두 등지에서 새로운 교회 리더십이 부상하고 ‘세(勢)’를 형성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아울러 2008년 이래 정부산하기관인 국무원 발전연구센터를 비롯해 중국사회과학원 세계종교연구소, 베이징대 중국종교 및 사회연구센터 등을 중심으로 가정교회 합법화에 대한 갑론을박이 벌어졌다. 이는 대외적으로 가정교회 존재 자체를 인정하지 않던 정부의 입장이 변화되는 게 아니냐는 추측을 낳기도 했다. 그러나 지난해 10월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 열린 제3회 로잔대회의 참석 여부를 놓고 도시가정교회 지도자들이 속속 출국 금지를 당하면서 정부와 교회 간 갈등은 새로운 국면을 맞이했다. 또 다른 희생양으로서 특정 교회에 대한 강도 높은 탄압의 가능성이 제기됐던 것. 일련의 과정에서 서우왕교회가 정부의 주 타깃이 되는 것은 시간문제였다.

왜냐하면 김천명 목사는 2003년부터 교회의 전면 공개화와 합법화를 추진해왔다. 그는 삼자회에 소속되는 걸 거부하고 정부의 허가는 받되 독립 교회로 존재하길 원했다. 이는 정부의 종교정책과 정면 배치되는 것이다. 이 때문에 그가 추진한 교회 등록 신청은 묵살됐다. 대학생 성경공부로 시작된 이 교회는 중국판 ‘메가 처치’가 됐지만 예배 장소로 빌려 쓰던 오피스 빌딩에서 쫓겨나야만 했다. 새롭게 건물을 빌리거나 사들이려고 할 때마다 교묘하게 방해를 받았다. 심지어 2700만위안(한화 45억원)까지 마련, 예배용 자체 건물을 구입하려 했지만 정부의 입김으로 좌절됐다. 성도들은 직장에서 해고 위협에 시달리기도 했다.

차이나네트워크연구소 왕이 연구원은 “그동안 공안은 서우왕교회를 비롯해 베이징 시안(錫安)교회, 상하이 완방(萬邦)선교교회 등 엘리트 중심의 도시교회 출현과 성장세에 놀라움을 금치 못했었다”면서 “양측 대립은 장기간 이어질 공산이 크다”고 전망했다.

◇시험대에 오는 도시가정교회 리더들=과거 가정교회는 워치만리 왕밍따우(王明道) 린센까우(林獻羔) 셰모산(謝模善) 리톈언(李天恩) 등 걸출한 인물들을 배출했다. 이들은 정부와 타협하지 않고 믿음의 순수성을 지킨 탓에 오랜 기간 감옥에서 지내야 했고 출옥 후에는 가정교회의 대표 아이콘이 됐다. 수많은 후배 목회자들은 이들의 불퇴전 신앙을 계승, 발전시켜왔다.

그중 김천명 김명일(金明日), 최권(崔權) 등 40대 조선족 목회자들의 활약상이 두드러진다. 두 명의 김 목사는 각각 칭화대, 베이징대의 1986년 학번 출신이다. 그중 김천명 목사는 대학 졸업 후 연구소에 일하면서 석사과정을 이수할 수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목회자의 길에 들어섰다. 1993년 칭화대 서문에서 10m 떨어진 곳에 교회를 개척한 그는 2002년 셰모산 목사로부터 목사안수를 받았다. 김명일 목사는 중국 내 대표적인 삼자신학교인 옌징신학교를 졸업, 교수사역을 하다가 2007년 미국 풀러신학교에서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이후 베이징 시안교회를 개척, 단기간에 성도 600여명으로 성장시켜 주목을 받아왔다. 그는 여러 차례 공안과 담판을 갖고 공개적으로 교회를 이끌어왔다. 아직까지 강도 높은 탄압을 받고 있지 않지만 언제든지 어려움을 겪을 개연성이 있다. 2009년 11월에는 최권 목사가 담임하는 상하이완방선교교회가 폐쇄되기도 했다. 성도 1200여명에 달하던 이 교회는 결국 11개 작은 교회로 나눠 그 생명력을 이어가고 있다.

최근 중국 사회와 기독교를 연구하는 학자들 중에 가정교회 문제의 ‘투어민(脫敏·금기를 깨고 공개적으로 다루자는 의견)’을 주장하는 이들이 늘어나고 있다. 중국 정부는 중국사회과학원 농촌연구소 위젠룽(于建嶸) 교수에게 2007년 10월부터 2008년 11월까지 국가연구 프로젝트인 ‘중국 가정교회의 현황과 미래’라는 연구를 진행시키기도 했다. 그러나 문제는 중국이 2005년 3월 발효된 ‘종교사무조례’에 따라 교회를 엄중 관리, 감독하려 한다는 것이다.

◇‘종교사무조례’ 위헌요소 있다(?)=7장 48조항으로 이뤄져 있는 이 조례는 정부의 종교관리 능력 강화는 물론 사전 허가에 따른 대만 등 해외 종교계와의 교류 등을 폭넓게 언급하고 있다. 국가기관에 개인 또는 단체 이름으로 정식 등록하지 않으면 종교 활동을 불허하는 규정도 있다. 종교시설에 대한 몰수, 불법 소득에 대한 벌금, 구속 등 처벌조항도 있다. 중국 전문가들은 이 조례를 공산당의 종교 통치라는 중국판 종교자유 관리권의 확대, 내부 체제 강화라는 두 마리 토끼를 한꺼번에 잡으려는 노림수로 평가한다. 지난달 10일 리톈언(李天恩) 등 20명의 가정교회 지도자들이 ‘서우왕교회 사태’와 관련해 우방궈(吳邦國) 전국인민대표대회 상무위원장에게 보낸 청원서에서 현행 종교사무조례에 위헌 요소가 있는지 심사해 달라고 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중국 현실에 맞는 기독교 모델을 찾는다=그동안 가정교회에는 ‘사다’(四多)’ 현상이 뚜렷했다. 즉 노인과 저학력자, 여성 신도가 많았다. 또 농촌중심이었다. 하지만 현재 신흥도시 가정교회 구성원들은 기업가, 교수, 문인, 화가, 연예인 등 매우 다양해졌다. 목회자들도 외국 유학이나 해외 선교사들과의 지속적인 교류 등을 통해 해외의 좋은 목회 프로그램들을 숙지하고 있으며 이를 중국 현장에 맞게 재구성해 나가고 있다. 직장선교, 가정사역 등을 적극 도입하고 있다. 자체 홈페이지뿐 아니라 ‘살구꽃(杏花)’ ‘교회(敎會)’ ‘감람나무(橄欖樹)’ 등 전문잡지를 펴내는 교회들도 늘고 있다. 자칫 반지성주의, 신비주의에 휩쓸릴 수 있는 전통 가정교회의 신학적 불균형을 바로잡아 가는 역할도 수행하고 있다. 특히 2008년 쓰촨(四川)성 지진 후 도시 가정교회 지도자 간 모임과 사회적 책임 논의가 빈번해지면서 목회자들은 ‘중국인에 의한’ ‘중국인을 위한’ 교회와 목회 모델, 신학과 실천 방안을 찾는데 골몰하고 있다.

◇풀어야 할 숙제 또한 많다=왕백석 선교사는 “도시 가정교회 리더들은 순회 전도자에 의존했던 과거 가정교회와 달리 장단기 목회계획을 갖고 사역하며 사회 참여의식과 책임감도 남다르다”면서 “정부의 압력에 대처하기 위해 기존의 법체계를 활용할 줄도 안다”고 밝혔다. 최근 몇 년 사이 도시 가정교회 출신 변호사들이 탄압받는 교회 및 소외계층을 위해 인권신장 운동을 펼치는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몇몇 도시 가정교회 목회자들은 일단 정부의 경계대상이 되고 있다. 이들과 해외 교계(인권단체 포함) 간 네트워크가 점차 견실해지기 때문이다. 특히 중동발 재스민혁명 열기의 중국 상륙을 우려해왔던 정부로서는 기독교 세력이 국내 불만세력과 연대하거나 민주화 시위에 어떤 역할을 하는 것은 아닌지 의구심을 떨쳐버리지 못하고 있다. 차이나네트워크연구소 왕이 연구원은 “도시 가정교회는 기독교가 국가에 반하지 않고 애국의 모체임을 각인시켜야 할 과제를 떠안고 있다”고 진단했다. 그는 “정부 또한 탄압하면 할수록 교회는 더 불같이 일어난다는 역사적 사실을 인정해야 한다”고 했다. 왕 연구원은 “정부는 교회를 체제 내에 편입시키려 할 때 삼자회로 무조건 들어오라는 태도보다는 ‘제3지대’를 마련해놓고 선택하게 하는 게 더 현명할 것”이라고 했다.

도시 가정교회는 정부와의 갈등 해결 외에도 교회 내적으로는 세속화와 싸워야 하는 숙제가 있다. 농촌 중심 리더십과 도시의 신세대 목회자 간 하모니, 국내외 정규 신학교 학위 소유자와 비학위 목회자 간 파트너십 구축도 녹록지 않다. 베이징 시안교회 김명일 목사는 “교회가 점차 대형화되면서 단순한 설교자가 아니라 목회자를, 평신도 목회자가 아니라 보다 훈련된 전문 목회자를 요구하는 시대가 됐다”고 말했다. 그는 “가정이나 아파트단지에서 은밀하게 집회를 하던 과거와 달리 오피스텔에서 보다 공개적으로 예배를 드리면서 장소 및 예배 형식의 변화가 불가피해졌다”고 했다. 임차 건물에서 더 이상 예배를 드릴 수 없도록 정부가 의도적으로 개입하는 한 제2, 제3의 서우왕교회 사태를 피할 수 없을 거라고 김 목사는 예상했다.
미션라이프] 과거 중국인들은 종교, 특히 기독교에 대해 매우 부정적이었다. 아편전쟁(1840∼42) 이후 기독교에 대한 문호 개방이 ‘무력’으로 이뤄졌다는 시각이 폭넓게 퍼져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같은 태도는 2000년대 들어 옛 말이 됐다. 설령 종교를 믿지 않더라도 이전처럼 적대적이거나 배타적이지 않게 됐다. 중국 현지 사역자들에 따르면 많은 공산당 당원들도 ‘종교는 오늘날 중국 사회에 실제적으로 유익하다’는 생각을 갖고 있다. 공개적으로 신앙을 고백하는 지식인들도 점차 늘고 있다. 경제발전과 함께 사회주의 이념이 약화되면서 민주, 자유, 인권, 평등에 눈을 뜨고 인생의 참 의미를 찾는 지적 순례에 나섰다가 복음을 받아들이고 있다.

◇지식인 선교의 보고가 열리고 있다=한 연구보고서에 따르면 베이징 내 46개 가정교회 성도 중 35세 이하가 64%, 고등교육을 받은 젊은층이 76%에 달했다. 60.5%가 자가 주택을, 24.4%가 승용차를 소유했다. 목회자의 학력이 높아졌고 사고 또한 매우 탄력적이다. 46개 교회 목회자 49명의 평균연령이 38세이고, 그중 75,5%가 신학교육을 받았다. 석사 학위 취득 2명, 해외 신학학위 취득 7명이었다. 박사학위 소유자도 있었다.

베이징이 지식인 중심 도시교회라면 저장(浙江)성 원저우(溫州)는 개인기업인 중심 교회가 대세이다. 원저우는 전통 가정교회와 신흥 도시가정교회가 가장 활발하게 병존하고 있는 곳이다. 삼자교회 목회자 일부가 제도권에서 이탈, 교회를 단독 개척해 베이징 도시교회 모델을 따라가기도 한다. 기존 가정교회에서 벗어나 당회까지 구성, 매우 역동적으로 사역하고 있다. 상하이의 젊은 기독인들의 헌신도는 베이징 교회에 비해 약하다. 이는 안정성과 실용성을 추구하는 지역 특색과도 관련 있다. 하지만 높은 임금을 포기하고 복음 전도자가 되는 박사학위 취득자들이 속속 나타나고 있다.

이준 선교사는 “톈진(天津)에서는 도시복음화 운동이 그다지 활발하지 않다. 베이징, 원저우에 비해 명목상 기독교인들이 많은 편”이라며 “도시가정교회의 초창기로 보면 맞다”고 전했다. 김평 선교사는 “푸젠(福建)성 샤먼(厦門)에서는 전통 가정교회와 도시교회간 리더십 계승과 협력이 다른 지역에 비해 매우 원활하다”며 “74세의 원로지도자인 양신페이(楊心斐)가 인도하는 성경공부반에 대학생 등 젊은이들의 대거 참여하고 있다”고 밝혔다. 다른 지역과 달리 학자들의 기독교 연구 열의가 뜨거운 곳이 샤먼이다. 청두(成都)의 경우 30대 문화·시사평론가 왕이(王怡)라는 탁월한 사역자가 ‘가을비의 복(秋雨之福) 교회’를 중심으로 대정부 투쟁과 복음화 운동을 선도하고 있다.

◇중국교회가 ‘선교중국’을 준비하고 있다=도시가정교회 지도자들은 교회 합법화를 정부 허가제에서 신고제로 바뀌자는 개념으로 추진하고 있다. 이들은 머잖아 교회가 법적 위치를 획득하게 되면 국내외 선교에 더 집중할 계획이다. 그럴 경우 오순절 계통의 가정교회 중심으로 추진 중이던 ‘백 투 예루살렘 운동(BJM)’이 급물살을 탈 가능성도 있다. 도시가정교회 내 준비된 신학자 및 목회자들이 BJM이 갖고 있는 신학적 문제점을 수정, 보완하고 세계 복음화를 당위성을 더욱 확산시켜나갈 것이기 때문이다. BJM은 중국 전역과 함께 이슬람권, 힌두권을 넘어 예루살렘까지 복음을 전하자며 1940년대에 본격적으로 시작된 중국교회의 선교 정신을 계승하고 있다.

요즘 가정교회 목회자들은 선교하는 중국교회, 즉 ‘선교중국’ 시대를 준비해야 한다고 이구동성으로 부르짖고 있다. 선교중국 운동은 2007년 한국의 중국선교단체들이 세계 기독교의 중국선교 200주년을 기념해 ‘중국선교협의회’를 결성한 뒤 중국과 중화권 교회 지도자들과 함께 주창한 캐치프레이즈이기도 하다. 5년 전만 해도 중국 내 선교 열의는 있었지만 구체적인 추동체가 없었다. 화교교회들과 연계된 해외 선교기관들이 중국교회와 공동으로 선교운동을 펼쳤지만 풍성한 열매로 이어지지 못했다. 이른바 ‘원저우 상인’들도 국내외에 교회를 세워 선교공동체 운동을 펼쳐왔다. 중국 접경국가는 물론 중동지역까지 선교사 또는 선교후보생들을 파송, 선봉대 역할을 감당케 했다. 이 역시 선교 경험이 미천하고 구체적인 선교전략 부재로 인해 ‘서바이벌(생존)’ 수준에 머물렀다. 비즈니스 사역 등으로 선교의 지평을 넓혀가려 하지만 복음 전도와 사업을 병행하기 쉽지 않아 적잖게 실패를 한다. 이 때문에 한국교회가 선교의 브릿지 역할을 해야 한다는 요청이 줄을 잇고 있다. 베이징 시안교회 김명일 목사는 “중국교회는 격려해주고 함께 할 수 있는 파트너를 필요로 한다”며 “한국교회가 전 세계 선교네트워크를 활용, 중국교회가 선교중국 운동에 힘쓰도록 실질적인 가이드 역할을 해주기를 바란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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